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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할수록 '볼 게 없는' OTT의 아이러니

by scarlett-jjelly 2026. 2. 10.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다 보면 OTT 앱이 한둘이 아니다. 매달 빠져나가는 구독료를 계산해보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막상 소파에 앉아 "오늘 뭐 볼까?" 하고 앱을 켜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30분째 썸네일만 스크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많은데 왜 볼 게 없지?"

 

혼자만 이상한 걸까? 아니다. 건국대학교 천종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대 OTT 구독자의 장기 이용자는 만족보다 습관이 지속 사용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정말 만족해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구독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왜 "볼 게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자.

구독할수록 '볼 게 없는' OTT의 아이러니
구독할수록 '볼 게 없는' OTT의 아이러니

많아 보이지만 실은 좁아진 선택지

 

넷플릭스만 해도 수천 개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볼 게 없다"고 느낄까? 첫 번째 이유는 실제로 콘텐츠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급 라이브러리를 갖췄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썸네일 몇 장과 끝없는 스크롤뿐이라 선택지만 많고 만족감은 줄어드는 이른바 선택의 역설에 빠진다.

 

더 큰 문제는 알고리즘이다. 전 세계 공통 알고리즘으로 '내 추천', '오늘의 트렌드', '신작'을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다 보니, 지역별 세밀한 맥락이나 취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내가 한 번 로맨스 영화를 봤다고 해서 계속 로맨스만 추천하고, 한 번 스릴러를 봤다고 해서 또 스릴러를 띄운다. 결국 우리가 보는 콘텐츠는 전체 라이브러리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알고리즘이 만든 '필터 버블' 안에 갇혀 있는 셈이다.

 

게다가 OTT 업체들도 전략을 바꾸고 있다. 예전처럼 무조건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양의 경쟁'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질의 경쟁'으로 전환하는 중이다. 신규 가입자 수는 정체되고 있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콘텐츠 제작비를 줄이는 추세다. 많아 보이지만 실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고르지 못하는 이유 - 선택 과부하

 

알고리즘이 선택지를 좁혀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고르지 못한다. 이건 심리학적 현상이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결정을 방해한다. 심리학자 셰냐 아이엔가의 유명한 '잼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6가지 잼을 제시한 쪽의 구매율이 12%로, 24가지 잼을 제시한 쪽 2%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 고민하고,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OTT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를 켰는데 '오늘의 인기 콘텐츠 Top 10', '나를 위한 추천', '새로 올라온 콘텐츠', '곧 공개 예정' 등 카테고리만 수십 개다. 각 카테고리마다 또 수십 개의 썸네일이 줄지어 있다. 하나를 클릭하면 "이것도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또 펼쳐진다. 끝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30분째 스크롤만 하다가 결국 전에 봤던 <시트콤> 재방송을 틀거나, 아예 "오늘은 그냥 유튜브 볼래" 하고 앱을 끈다. 미국 내에서 프리미엄 스트리밍 서비스를 정기 구독하는 사람 중 해지했다가 재가입한 비율이 2022년 29.8%에서 2024년 34.2%로 늘었다. 볼 게 없으면 해지했다가 킬러 콘텐츠가 나오면 다시 구독하는 'OTT 유목민'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습관으로 유지되는 구독, 그리고 부담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볼 게 없다고 느끼면서도 우리는 구독을 끊지 않는다. 한국인의 1인당 평균 OTT 구독 개수는 약 2.2개다.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를 동시에 구독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매달 2만 원에서 3만 원 이상이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왜 끊지 못할까? 어쩌면 전 세계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집단적 심리 때문일 수 있다. 친구들이 "어제 넷플릭스에서 본 거 진짜 재밌던데" 하면 나만 대화에 끼지 못하는 느낌. FOMO(Fear of Missing Out, 소외에 대한 두려움)다. 실제로 만족해서가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구독을 유지하는 것이다.

 

게다가 구독은 '습관'이다. 매달 자동 결제되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카드 명세서를 보다가 "아, 이거 아직 끊지 않았네" 하고 깨닫는 정도다. 그러다가 "이번 달은 바빠서 못 봤지만 다음 달엔 볼 거야" 하며 또 미룬다. 이렇게 반복되다 보면 1년이 지난다.

 

 

 

 

수많은 OTT를 구독하고 있지만 정작 볼 게 없다고 느끼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이건 단순히 콘텐츠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알고리즘이 좁혀놓은 선택지 안에서도 우리는 선택 과부하에 시달리고,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습관과 FOMO 때문에 구독을 유지한다.

 

한 번쯤 물어보자. "나는 지난달에 이 OTT에서 뭘 봤지?" 답이 명확하지 않다면, 정말 필요한 구독인지 점검해볼 때다. 많이 구독한다고 더 많이 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선택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진짜 '볼 게 없는' 건 OTT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 능력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 30분째 스크롤만 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보자. 그리고 정말 보고 싶은 한 편을 고르거나, 아니면 그냥 앱을 끄고 다른 걸 해보는 건 어떨까. 선택의 역설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니까.